
정신을 차려보니 파리 시내 오페라(Opera Garnier) 앞에 서 있었다.
떠나오기 전에 미리 인터넷에서 어학원 위치와 숙소 위치를 파악해둔터라 방향만 알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외국인, 이방인.
내 앞에는 새까맣고 커다란 이민가방이 있었고, 등에도 커다란 백팩을 매고 있었다.
29년을 살아 온 삶의 무게,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심에 비하면 조촐한 짐이었다.
뒤로는 오페라에 들어가는 입구를 오르는 계단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출입 문으로 보이는 문들이 있었다. 그 문들 양옆으로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조각들이 위치해 있었고, 위로는 테라스, 또 그 위로는 금장으로 장식된 조각상들이 한낮의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9월 말, 파리의 날씨는 아직도 무더웠다.
두리번 거리며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찾는 내 옆으로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빨강깃발을 앞세우고 가이드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으며, 꾀재재한 너댓명의 집시무리가 하이에나 처럼 어슬렁거리며, 얼치기 관광객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의 통행이 많은 시내에서 한낮의 시간이라 계속 그 자리에 있기가 힘들었다.
현금으로 환전해 온 그의 두달치 생활비를 집시무리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기에 서둘러 어학원을 찾아야했다.
귓속으로 메끄럽게 흘러드는 불어를 한참을 듣고 있었다.
실전이었다.
수도 없이 머릿 속으로 그려봤고, 상상 속에선 수많은 친구들도 사귀었고, 쿨한 모습이었다.
막상 프랑스에 도착하니, 입국심사대 앞에서 얼어붙어버렸던 것이다.
심사관의 차갑고 낮은 목소리는 당황하는 나를 보며 더욱 목소리를 높였고, 한참만에 눈치로 보아 왜 왔고, 어디에 거주할 예정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
첫번째 절벽, 정신이 아득해졌고, 주변이 거무스름해지며, 심사관의 입만 보였다.
우리 공교육 폐해의 표본, 몇년간의 교육과 영상매체로 단련된 외국어 눈치는 분위기를 봐서 상대의 의도를 때려맞추는게 가능하나, 그에 맞는 대답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문제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
공교롭게도 이 때가 나의 서양인과 첫 대면, 첫 대화였기 때문에 더더욱 난처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영어단어를 뒤죽박죽 내뱉는 말을 영어를 할 줄 알았던 심사관이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쾅'
여권에 프랑스 파리 샤를드골 공항의 입국 도장이 찍혀졌다.
심사관은 곁눈으로 통로를 지나는 그를 쫓았고, 비로소 그는 회색빛 파리의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브뉴 드 로페라(Avenue de l'Opera)'.
앞으로 수도 없이 지날 이 길을 나는 손으로 더듬듯 해멘 끝에, 그리고 인내심이 바닥날 쯤에서야 오페라 가르니에(Opera Garnier)에서 고작 2,3분 거리의 작은 골목에서 어학원을 발견했다.
벽에 작은 금색 금속판이 붙어 있었고, 거기엔 음각으로 'A.A.A' 라고 씌여 있었다.
이 곳은 한국의 간판 시스템과는 다르게, 도시미관을 고려해서 법으로 아무 간판이나 설치할 수 없게 정부에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었고, 찾고 있는 행선지 건물 앞에 가서야 벽에 붙어있는 작은 간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때의 나는 왜 프랑스 사람들이 약속을 정하거나 위치를 말할때 어디 옆이 아니라, 주소의 길 이름과 번지까지 얘기하는지 알지 못했다.
덕분에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울퉁불퉁한 파리의 길을 수시간 동안 끌고 다닌 이민가방을 지탱하는 몇개의 바퀴는 이미 부서져 바퀴와 쇠가 평평하게 갈려있었다.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을 풀어 이민가방 위에 올리고 숨을 가다듬었다.
이제 두번째 프랑스인과 맞닥뜨려야했기 때문이었다.
공항에서야 운좋게 통과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번에 예약사항을 잘 못 확인한다면, 프랑스에서 첫날을 거리에서 지낼 수도 있었기에 계약사항이 적혀있는 땀에 절은 종이를 다시 펼쳤다.
이 곳을 찾으며 몇번을 펴고 접어봤을까.
처음 출력됐을 이 종이는 한번도 접히지 않은 채로 클리어 파일에 끼워져 나에게 전달 됐다.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를 타며, 손쉽게 꺼낼 수 있게 백팩 앞쪽 작은 주머니에 넣기 위해 최초 두번을 접었고, 파리 공항에 도착해서 가방에서 꺼낸 종이를 확인하고, 두번 접었던 종이를 한번 더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그렇게 세번 접어진 종이는 길을 헤매는 내 손에서 수도 없이 접혔다 펴지며, 어학원 앞에 도착했을 땐, 접힌 부분의 인쇄글은 보이지 않 게 돼 버렸다.
이때의 나는 몰랐다.
앞으로 펼쳐질 타지생활이 내 손에 들려진, 이 종이와 같은 줄을.
머릿속을 정리했다.
들어가서 당당하게 예약사항을 확인하러 왔고, 어학 일정과 수업시작날짜, 수업시간, 준비물. 그리고 숙소의 위치, 호수, 출입번호, 열쇠, 지켜야할 사항 등을 확인해야 했다.
모국어인 한국어로 얘기해도 메모가 필요할 것이다.
이 것을 내 입을 통해 말하는 최초의 불어로 해야했기에 긴장이 고조돼 얼굴엔 약간의 홍조를 띄었고, 손은 땀으로 다시 젖었다.
이미 시간은 오후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어학원 앞에 도착해서 부터 피곤이 쏟아지고 있었다.
첫번째 정착지에 잘 도착해서, 짐을 풀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 뒤에, 부드러운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약간의 성취감을 느끼며, 담배를 한대 피우고 싶었다.
이곳에서 시간을 지채할 수 없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고, 그 첫번째가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을 낮추는 것이었다.
내가 외국인임을, 이 곳에서 나고 자란 현지인이 아니라고, 땀에 절은 몸과 커다란 가방들이 말해주지 않냐고.
프랑스어를 모국어 처럼 못하는 내 자신을 받아들여야했다.
앞으로 당면하게 될 난처함과 굴욕은 몇시간 전 이곳에 처음 온 외국인이라면 당연한 것이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그렇게 생각하니 놀랍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는 뚱뚱한 백팩을 다시 어깨에 맸다.
어깨끈을 조절하며 대면하기 싫은 상황으로 자신을 다독이며 밀어넣고 있었다.
쉼호흡을 크게 한번 했다.
커다랗고 무거운 나무문을 반쯤 열어 한쪽 다리로 닫히는 문을 고정하고, 이민가방을 어두운 시내로 들여 놓고, 밖에 있는 나머지 다리도 어둠속의 실내로 완전히 들어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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